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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주년 잃어버린 영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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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est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5-06-0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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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잃어버린 영웅을 찾아서- 15.


죽음도 막을 수 없던 애국,채성룡지사 1928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한 조선인이 자신의 뿌리인 한반도에 발을 디뎠다.


그의 이름은 채 그리고리 니콜라예비치.


이미 자신의 가족들은 1860년대.


▲ 카자흐스탄 현지에서 활동 중인 ‘Doknip-Patriot’.


용인 남사 더클러스터


카자흐스탄에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그 (조상) 중 상당수가 공산주의자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오성묵·채성룡·최고려·김미하일·최성학 등 일제강점기 연해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애국지사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푸른역사 제공 채그리고리란 이름의 고려인 3세 독립운동가 이름은 임경석의 자료 말고는 한줄도 나오지 않는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공산대학을 졸업했고, 러시아공산당 연해주당 고려부 비서, 연해주당 정치학교 교수를 역임한 거물.


37살의 러시아 태생 조선인, 즉 고려인이었다.


본명은 그리고리 니콜라예비치 채였고, 조선식 이름은채성룡(蔡成龍)이었다.


국내에 무사히 안착한다면 박준호라는 가명을 쓸 예정이었다.


2주 전에 중국 베이징을 떠나, 여러 준비를.


추서된 건국훈장 애국장을 전수받습니다.


이 원장 등은 오성묵 선생 외에 1923년 베이징에서 항일결사회 총무로 활약한채성룡선생, 1920년 블라디보스토크 한인사회당의 부회장을 역임한 미하일 김 선생의 후손도 찾아내 각각 지난 3·1절과 순국선열의 날에 훈장.


김씨는 "경제적 지원을 해주면 좋지만 바라지는 않는다"며 "죽기 전에 한국을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조부채성룡(1892~1929) 선생은 1920년 10월 옛소련 옴스크에서 고려인중앙선전의회를 결성하고 항일투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견호 원장 등은 오성묵 선생 외에 1923년 베이징에서 항일결사회 총무로 활약한채성룡(1892~1930) 선생, 1920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들어진 한인사회당의 부회장을 역임한 미하일 김(1896~1938) 선생의 후손도 찾아내.


전창우(全昌禹) 정재순(鄭載淳) 정찬조(鄭燦祚) 조삼룡(趙三龍) 조이권(趙利權) 조익준(趙翊俊) 조정하(趙禎夏) 차일만(車一萬)채성룡(蔡成龍) 최영서(崔永瑞) 최찬식(崔燦植) 홍순극(洪淳極) 황원호(黃源浩) ◆건국포장(22명) 구철성(具哲成) 김재원(金在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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